말 걸기

좋아해 2 2014. 3. 2. 03:12

끽끽 고장난 기계 같은 인생을 이제와 새로 바꿀수야 없고, 그러면 기름칠이라도 해보고자 시작한 3개월의 알바였다. 7080 라이바의 바텐더라는 일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 한가지를 꼽아보다면 그건 '말 걸기'였다. 바텐더에게 말 걸기는 어찌보면 칵테일을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말 걸기가 어려운 바텐더라니. 정말 볼 품 없는 거 알겠다. 하지만 변명이 아니라 말 걸기가 어려운 건 누구에게나 당연하다. 내가 평범 수준 이하의 대화 구사 능력을 가졌다든지 과하게 수줍음이 많은 처녀라든지 그런게 아니라는 거다. 처음보는 사람, 서로가 어떤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사람에게 첫 운을 띄우는 일이 쉬운 사람은 정말 없을 것이다.


빅이슈 판매원 아저씨가 건네는 친절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뭉클해지고 고마워지는 건 그걸 알기 때문이었다. 말 거는 것의 어려움.


소위 말하는 정상궤도의 사람들은 자신은 늘 평균 수준의 친화력, 소통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그런 정상궤도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타인에게 '먼저' 대화를 거는 일에 늘 인색하다. 대개 침묵의 어색함을 더 많이 느낀 사람이 하는 수 없이 먼저 입을 떼고, 다른 사람은 그제서야 머뭇머뭇 대답한다. 하지만 흔히 사회의 소외자라고 불리던 빅이슈 판매원 아저씨들은 부끄럽게 잡지 한 권을 사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따뜻한 말을 건넨다. 사람에게 외면받은 그들이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기까지에는 얼마만의 시간과 얼마만의 노력이 필요했을까, 문득 마음 깊이 고마워지는 것이다.


흔히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사랑도 받아본 놈이 나눌 줄 안다고들 한다. 하지만 영 틀린 말이다. 사랑 받아본 놈들은 언제나 받기만 원하고 나눌 줄 모른고, 관심 받아본 놈들은 혹여나 소외를 경험하게 되면 등 돌린 남을 탓하기만 한다. 이젠 자기가 관심을 줘야하는 차례라는 걸 언제나 모르는 거다. 결핍되어 본 사람만이 결핍된 것의 소중함을 절실히 안다.

Posted by 긴목을모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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