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봄을 두려워한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봄은 우울을 더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자신만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
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가을에는 조금만 처져 있으면 가을 타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일주일에 여섯날을 웃다가도 하루만 덜 웃으면 가을 타냐는 말을 듣는 계절, 그게 가을이다.
그만큼 가을을 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하긴. 3분기라는 시기는 1, 2분기에 대한 반성을 하기에도 4분기에 대한 다짐을 하기에도 참 어중간하다. 올해의 반성을 해보고 잘못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먼 시간, 남은 올해를 다시금 새롭게 뒤엎어기엔 참 모자란 시간이다. 이도저도 시도하기가 겁나는 시간. 그런데 또, 이 3분기는 수확과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다. 나의 수확과 결실은 과연 무엇이었나 되새김질하고, 괜히 남의 그것과 비교해보게 되는 계절. 결국 올해는 다 틀렸구나 남은 1분기 될 대로 흘러 보내고 나는 내년이나 기약해야겠다, 싶은게 가을이다. 허무한 계절이구나.
그런데 사실, 이런거 다 필요없이 사실 그냥 날씨가 그래.
쓸데없는 사색하기에, 설렁설렁한 바람 좀 맞으면서 고독하기에 참 좋은 날씨.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사람들이 가을을 타더라도, 난 다행히 가을을 타지 않는다.
시원해지는 날씨도 좋고, 연말이 다가오는 느낌도 좋다. 게다가 생일도 있다.
식욕도 오르고 기분도 업되는게 나의 가을이다.
대신 가을을 기분 좋다게 보내는 대가로 난 봄을 타...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며 연말 내 떠들썩하던 거리도 잠잠해지고, 송년회에 신년회에 사흘이 멀다 벌이던 놀이판도 끝이 난다. 신정이 되어 새 마음 새 뜻으로 1년 계획을 세우던 기세도 수그러가고,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설날도 지나간다.
연말이 좋아 연말만 손 꼽아 기다리던 내게, 연말이 다 지나갔다는 사실은 참 우울하다.
어느 시인보다도 고독하고 어떤 철학가보다도 허무하다. 엉엉엉...
그런데 사실, 이렇게 설명해도 왜 우울해지는지 몰랐는데... 누구나 다 봄을 두려워 한다고 하네.
그럼 난 결국 봄을 타는게 아니란 말이었다.
그냥 봄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거구나. 이게 더 좋네.
도서관에 처 박힌 채로 있었는데, 문득 우르릉 쾅쾅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많이 오는 구나, 싶었는데 얼마나 많이 오면 어느 층 도서관 천장이 뚫렸다고 한다.
104년만의 가뭄에 고마운 비이긴 하지만, 뚫린 천장 밑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우울할까. 도서관에서 책을 부둥켜 앉은 채로 물벼락을 맞았다고 상상해보자. 그건 정말 고독하고 허무할 것 같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내가 우울하면 우울한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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