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브레송 展 <결정적 순간>
2012.05.19(토)~2012.09.02(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에 다녀왔다.
이름만 듣고는 누구지...하던 사람들도 그의 대표작을 보고 나면 아...할 것 같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사진.
카르티에-브레송은 사진에 제목을 달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어느 장소에서 찍은 것인지만 기록해 두기 때문에 모든 사진에는 제목 대신 나라 혹은, 도시의 이름이 붙어있다. 파리의 생-라자르 역 뒤에서 찍었다는 이 사진은 카르티에-브레송 앞에 늘 따라 붙는 수식어 '찰나의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진이다. 점프하는 사람의 두 발이 모두 허공에 떠 있는 몇 초의 순간. 아마 따지면 몇 초도 아닌 영 쩜 몇몇 초 일지도 모른다. 왠종일 음울했던 역 뒤편에 즐거운 리듬감이 생겨나는 그 잠시나마의 순간을 카르티에-브레송은 포착했다. 전체는 우중충하지만 어딘가 생기발랄한 그런 아이러니한 위트. 꼭 대표작이 아니었더라도, 유명한 사진이란 걸 모르고 봤더라도 난 아마 이 사진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을 것 같다.
카르티에-브레송은 찰나의 미학, 순간의 미학을 '잘 포착하는' 능력을 가진 작가였다. 하지만 '잘 포착하기' 이전에 '잘 기다릴 줄 아는' 작가였다. 잘 기다린다는 건 실로 엄청난 능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 장면을 연출한다. 카르티에-브레송은 풍경에서 혹은, 인물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감성을 찾아내고 무엇을 찍을지 결정하고 나면, 원하는 구도에 렌즈를 댄 채 그저 조용히 기다린다.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에 가장 적합한 구성이 만들어 질 때까지. 그리고 공간이 완성되는 바로 그 순간, 셔터를 누른다. 그는 시공간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공간이 그의 렌즈에 들어오게 만든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카르티에-브레송의 순간들은 모두 연출도, 그렇다고 우연도 아니었다는 거다. 기가 막히게 좋은 사주를 타고 태어나서, 어딜가서 어느 순간 뭘 찍든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그의 렌즈에 우연히 포착된 게 아니다.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 담아낸, 진실된 찰나의 순간이다.
이런 장점이 잘 느껴지는 사진은 대표작 말고도 많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타라스콩...?(tarascon인데 프랑스의 지명인 것 같다. 뭐라고 읽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하하)
오르막을 오르는 노인과 내리막을 내려가는 두 명의 소녀. 하지만 빛이 비추는 건 노인이다. 그래서 우울하지가 않다.
셔터를 조금만 빨리 눌렀다고 가정해보자. 노인과 소녀들의 위치는 뒤 바꼈을 것이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오르막을 오르는 무기력한 노인과 밝은 빛 속에서 내리막을 내려가는 생의 활기를 가득 품은 소녀들이 찍혔겠지. 그건 정말이지 우울하지 않나.
브레송의 찰나에는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이런 센스가 있다.
풍경 사진만 집중해서 말했지만, 이번 사진전에서는 보도사진과 인물사진 등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잘 기다릴 줄 아는 그의 능력은 인물 사진에서도 잘 통했다. 브레송은 인물의 일상을 함께하며 그/그녀의 성격과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그의 인물 사진에는 사람의 내면적 감성묻어 난다. 예컨데 브레송이 찍은 사람 중에는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키스 장면을 찍었다는 사진가가 있었다. 난 분명 그 키스 사진을 본 적도 없는데, 문득 이 사람이 찍은 키스 사진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면이 맞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거다.
그 사진가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네이버 검색!을 말고 전시회 가보면 좋을 듯 하다. 특히, 인터넷이나 여타 화면에서 그의 사진을 보면 미세하게 명암이 다른데, 흑백 사진에서는 그 미세한 명암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화면이 조금만 밝아도, 조금만 어두워도 많은 부분이 묻혀 보이지 않는 게 흑백사진이다. 전시장에 가면 그의 섬세한 인화 실력(?)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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