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에게 연애편지를 쓸거야
누군가 볼 지 안 볼지도 모를 글을 끊임없이 쓰는 일이란 참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대단하단 생각을 해왔다.
혼자 쓰고 읽는 글이야 일기라는 이름으로 옛날부터 쭉- 있어 온 글쓰기 방법이지만, 인터넷에 쓰는 일기는 원초적인 일기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아무리 아무도 모르는 블로그에 혼자 쓰는 일기라도, 인터넷에 올린 일기는 이미 내 방 서랍 깊숙이 고이 모셔진 나만의 비밀스런 그것과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예컨대, 초등학교 시절에 담임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 특히 같은 반 친구가 내 일기를 훔쳐 본다는 건 정말이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친구가 내 일기를 보고 점수를 매길 것도, 작문 실력을 판단할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부끄럽고 어딘가 찝찝하고 껄끄러운 그 느낌...
반대로 블로그에 올려둔 일기를 누군가 와서 훔쳐 본다 한들... 그래서, 뭐? 딱히 별 감흥이 없다.
누군가에게 꼭 보여 줄 목적으로 쓰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봐도 딱히 상관없는... 어쩌면 누군가가 봐 줬으면 좋겠다 싶은...(이게 핵심이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란 건 적어도 이 세 가지 명제들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 봐줬으면 좋겠고, 그래서 내 얘기에 많이 공감해 줬으면 좋겠고, 가끔은 힘도 줬으면 좋겠고, 위로도 해 줬으면 좋겠고, 좀 웃어도 줬으면 좋겠고...싶지만 누군가 봐 줄 지, 안 봐 줄 지 모르는 게 블로그 글이다.
내가 지금까지 블로그를 못했던 가장 큰 이유도 이거다.
누군가 읽고 나서 페이스북처럼 라이크도 좀 듬뿍 눌러주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처럼 스티커도 팍팍 붙여줬으면 좋곘다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다... 이거지.
소설가 김영하의 말에 따르면 좋은 글을 쓰려면 '연애 편지' 쓰듯 글을 써야 한다고 한다.
연애 편지는 먼저 목표(누가 읽을지)가 명확하고, 목적(내가 널 꼬시겠다)도 명확하다. 그리고 어떻게든 꼬셔 내겠다는 집념이 있기 때문에 글 하나를 쓰는데 있어서도 최대치의 노력을 쏟아 붓게 된다. 밤새 시집을 뒤적이며 좋은 문구를 찾아내고, 수식어와 미사여구를 달고, 지웠다 썼다를 몇 십 번 반복하면서 말이다. 근데 일단 블로그 글쓰기는 처음부터 목표가 없으니, 시작부터 전의가 상실된 기분이었다.
파워 블로거들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 수가 없을 수가 없다. 그들도 처음에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았으려나. 그래도 뒤숭숭한 기분을 이렇게 보기좋게 극복!하고 갈 곳 없을 연애편지 쓰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네. 훌륭하군.
안 읽어도 상관없다. 뭐. 연애편지 쓰는 기분으로 설레는 일기를 써야겠다. 언젠가 아무나 한 놈은 걸리겠지...
라고 생각하며 시작하지만 혼자서만 쓰고 읽는 동안 내가 내 연애편지에 홀라당 꼬여 넘어가서 평생 내가 나한테 연애편지나 쓰면서 솔로가 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되면... 그건... 함정.